목차
“모든 나라가 공통으로 지켜야 하는 약이 있다고요?”
누군가는 감기에 걸리고, 누군가는 말라리아에 걸립니다.
환경과 질병은 다르지만 ‘치료받을 권리’는 인류 모두에게 공통이에요.
그래서 세계보건기구(WHO)는 1977년,
“모든 나라가 공통으로 확보해야 할 필수 의약품 목록”을 만들었습니다.
이게 바로 WHO Essential Medicines List, 즉 필수의약품 리스트예요.
이 리스트는 단순한 약의 목록이 아니라,
‘인류가 최소한으로 지켜야 할 건강의 기준선’이에요.

WHO 필수의약품 리스트는 어떻게 생겼을까?
WHO는 2년에 한 번씩 필수의약품 리스트를 업데이트합니다.
처음엔 208개 품목이었지만,
지금은 감염병·암·희귀질환 치료제 등 600개가 넘는 약이 포함돼 있어요.
이 목록은 다양한 기준을 고려하여 선정합니다.
- 효과(Effectiveness) – 임상적으로 확실히 효능이 입증된 약
- 안전성(Safety) – 부작용이 감당 가능한 수준인 약
- 비용효과성(cost- effectiveness) – 가격이 합리적이고, 지속적으로 공급 가능한 약
- 질병부담 (burden of disease) – 치료 대상 질병으로 인한 사회적 손실이 클수록 우선 순위
- 대체약제 대비 비용효과성 –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나은 치료 효과를 주는 약
- 안정성(stability) – 날씨의 영향을 덜 받고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약
이렇게 선정된 약은 국가별 보건체계의 뼈대가 됩니다.
예를 들어 결핵약, 인슐린, 항생제, 산모용 옥시토신 같은 약들이 포함돼 있어요.
한국의 필수의약품은 어떻게 정해질까?
한국은 WHO 모델을 바탕으로
2015년부터 ‘국가필수의약품 지정제도’를 운영하고 있어요.
제2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2024~2028)의 일환으로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다음과 같은 절차로 약을 지정합니다.
1️⃣ 보건의료전문가와 병원, 공공기관이 ‘안정적으로 공급 필요성이 높은 약’을 제안
2️⃣ 질병관리청, 복지부 등과 협의 후, 필수성·대체성·공급가능성을 평가
3️⃣ 지정 시 정부가 생산·유통을 관리하고, 필요 시 비축·수입을 지원
즉, “약이 필요한데 시장에서 사라질 위험이 있다면 국가가 개입한다”는 원리예요.
제도의 의미와 철학
국가필수의약품 지정제도는 단순히 “부족한 약을 국가가 관리한다”는 행정 장치가 아니에요.
이 제도의 뿌리는 ‘건강은 권리이며, 의약품은 공공재다’라는 생각에 있습니다.
시장 기능만으로는 안정적 공급이 어려운 의약품이라도,
국가가 직접 개입해 모든 국민이 필수 약을 적절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죠.
이 제도는 세 가지 목적을 갖고 운영됩니다.
첫째, 국민의 건강권 보장. 누구나 필요한 때에 약을 구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보건의료체계의 안정. 의약품 품절이나 생산 중단으로 의료현장이 혼란에 빠지지 않도록 막는 장치입니다.
셋째, 공중보건 위기 대응. 감염병, 방사능 노출, 재난상황 등에서 필요한 의약품을
국가가 신속히 확보·배포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시스템이에요.

지정의 기준은 ‘필수성’과 ‘공급 안정성’
엄격한 기준 아래 세 가지 축으로 선정돼요.
먼저, 필수성(Essentiality) — 해당 질환 치료에 꼭 필요한지, 대체가 어려운지를 봅니다.
둘째, 공급 불안정성(Supply Instability) — 생산 기업이 한 곳뿐이거나 원료 공급이 단일화되어 있는 약,
수익성이 낮아 생산 중단 위험이 큰 약이 포함됩니다.
마지막으로, 정부 정책 수행을 위한 의약품(Policy Support) —
전염병 대응, 방사능 사고, 재난 구호 등 국가 보건안보에 필수적인 약들이죠.
결국 이 제도는 질병의 위중도와 사회적 책임을 동시에 고려한 “국가 차원의 건강보장 장치”예요.
모든 사람과 지역사회가 품질이 보장된 안전하고 저렴한 의약품을 언제나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계약,
그것이 국가필수의약품 지정제도의 철학입니다.
퇴장방지의약품과 어떻게 다를까?
비슷하지만, 초점이 달라요.
| 구분 | 국가필수의약품 | 퇴장방지의약품 |
|---|---|---|
| 목적 | 국민 건강을 위한 최소 의약품 확보 | 시장에서 사라질 위험이 있는 저가약 보호 |
| 관리 주체 | 식약처·복지부·질병청 | 식약처·건보공단 |
| 지정 기준 | WHO 모델 기준 + 국내 보건환경 | 생산단가·시장성 중심 |
| 지원 방식 | 수입·비축·공공생산 | 약가 조정·생산비 지원 |
예를 들어 결핵 치료제는 두 제도 모두에 포함될 수 있어요.
필수이면서, 동시에 시장성이 낮기 때문이에요.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운영할까?
- 미국은 ‘Essential Medicines for Children’ 리스트를 따로 두고,
국가 비축 시스템(National Stockpile)에서 공급을 관리해요. - 영국은 NHS가 ‘Core Drug List’를 통해 병원 내 공급을 책임지고,
필수의약품 생산이 중단되면 국가가 직접 대체 공급을 조정합니다.
즉, 나라마다 운영 방식은 다르지만 목적은 같습니다.
“필요할 때, 누구나, 어디서나 필요한 약을 구할 수 있게 하자.”
내 일상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아이가 고열로 응급실에 갔을 때,
의사가 “이 약은 지금 공급이 끊겼어요”라고 말한다면 얼마나 불안할까요?
또는 시골 보건소에서
심장약, 인슐린, 혈액응고 방지제를 구할 수 없다면
그건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생명 접근권의 위기예요.
국가필수의약품 제도는 바로 이런 ‘보이지 않는 불안’을 예방하는 장치예요.
약을 구할 수 있다는 건,
결국 국가가 국민의 생명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국가필수의약품’이란, 국가의 신뢰를 지탱하는 시스템
필수의약품 리스트는 “의료는 선택이 아니라 권리”라는 선언문이에요.
그리고 한국의 국가필수의약품 제도는
그 권리를 구체적인 ‘약’의 형태로 실현하는 장치예요.
“보이지 않게 우리를 지키는 약이 있다면,
그것은 정부와 시민이 함께 만든 신뢰의 시스템이에요.”

미네의 한 마디
“병원에 갔을 때 ‘약이 없다’는 말을 듣지 않도록,
전 세계가 서로 배우고 지켜온 제도가 바로 필수의약품이에요.
오늘 우리가 안심할 수 있는 건,
누군가 이 ‘최소한의 약 목록’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에요.”







